[칼럼 - 정완 교수] 합법이라는 이름의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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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6-10-30 09:17본문
<합법이라는 이름의 약탈>
서기 410년 영원할 것 같던 로마가 서고트족 침입으로 약탈당했다. 로마의 몰락을 두고 기독교가 전통 신들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일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을 집필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단순히 기독교를 변호하는데 있지 않았다. 그는 로마의 번영과 국가의 권력이 과연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그가 신국론에서 제기한 유명한 질문은 오늘날에도 섬뜩할 만큼 생생하다. 정의가 사라진다면 국가와 거대한 강도집단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해적의 일화를 통해 이 문제를 설명한다. 해적에게는 작은 배와 적은 무리가 있을 뿐이고 국가에는 거대한 군대와 영토가 있지만, 타인의 것을 힘으로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국가를 강도떼라고 규정하는 말이 아니다. 핵심은 국가의 규모나 법적 형식만으로는 그 권력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합법’이라는 말을 ‘정당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합법성과 정당성은 다르다. 합법성은 법과 절차에 부합하는지를 묻지만, 정당성은 그 법과 권력의 행사가 정의로운지를 묻는다.
역사는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치독일처럼 국가권력이 법률과 행정체계를 이용해 특정집단의 자유와 재산을 빼앗고 박해를 제도화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폭력은 언제나 칼과 총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법률과 행정명령, 관료제라는 정교한 외피를 두르고 나타난다.
그렇다고 이것이 법을 불신하거나 법질서를 무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법이 진정한 법치가 되기 위해서는 법 자체가 정의와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 국가의 행위가 법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행위가 자동으로 정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가권력은 세금을 부과하고 법을 집행하며, 일정한 조건 아래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강제력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이 강할수록 그 권력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장치가 더욱 중요하다. 독립된 사법제도와 언론의 자유, 시민의 감시와 비판, 소수자의 권리보호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모든 불공정한 정책을 곧바로 ‘약탈’이나 ‘범죄’라고 부를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정책의 결과를 두고도 합리적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질문을 오늘날에 적용한다는 것은 국가를 함부로 ‘강도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권력이 무엇에 의해 정당화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 합법적인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즉, “그 합법성의 바탕에 정의가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법이 정의를 구현하는 장치가 아니라 권력을 포장하는 외피가 되는 순간,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시민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거대한 권력기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권력이 법과 정의의 원칙에 의해 제한되고 시민의 존엄과 권리를 보호한다면, 국가는 단순한 강제력의 집합을 넘어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1,600년 전 로마의 위기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던진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를 국가답게 만드는 것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그 권력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이다. 그러므로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법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도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도 아니다. 법의 외피에 안주하지 않고 그 법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과 정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일이다.
정의를 잃은 국가는 거대한 조직을 갖추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오래된 질문은 결국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질문이 아니라 국가가 왜 정당한가를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자유로운 시민의 가장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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