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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완 교수] 유토피아에는 변호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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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6-10-2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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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에는 변호사가 없다>

500여년 전 영국의 대법관이자 촉망받는 변호사였던 토머스 모어는 저서 ‘유토피아’를 통해 서슬퍼런 경고를 남겼다. “유토피아에는 변호사가 없다. 그들은 사실을 왜곡하고 법을 교묘하게 비트는 악마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사법제도의 심장부에서 권력의 정점을 경험했던 인물의 고백치고는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러나 법의 생리와 사법의 타락 과정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목격했던 그의 고백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 사법 현실 앞에서도 기괴할 만큼 생생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21세기의 사법제도는 모어가 우려했던 변호사의 사악한 속성을 시스템 내부로 완전히 공인하고 확장한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법정은 더이상 ‘누가 더 진실한가’를 가리는 정의의 장이 아니다. 그곳은 ‘누가 더 비싼 법조기술자를 선임해 법망을 정교하게 빠져 나가는가’를 겨루는 거대한 자본과 기술의 전쟁터로 변질된 지 오래다.

사법 정의의 핵심이어야 할 법률은 일반시민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현학적 용어와 복잡한 조항 뒤로 숨어버렸다. 법이 복잡해질수록 대중은 소외되고, 그 장벽을 독점한 법조인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지식의 권력화이자 정의의 상품화다. 이 권력을 쥔 자들은 법률을 공공의 무기가 아닌,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고 강자의 허물을 덮어주는 방패로 거래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전관예우 실태와 대형 로펌의 행태는 모어가 경고한 사악한 결과의 결정판이다. 퇴임 직전까지 국가의 사법권을 행사하던 고위법관과 검사들이 옷을 벗자마자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겨 수억원,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챙긴다. 그들이 파는 것은 법리적 전문성이 아니다.

현직 후배 검사와 판사에게 행사할 수 있는 ‘사적 영향력’과 ‘전화 한 통의 힘’이다. 권력자와 자산가들이 저지른 명백한 범죄가 전관 변호사의 손을 거치며 ‘집행유예’나 ‘불기소’라는 면죄부로 세탁되는 과정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상이 되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는 시장바닥의 흥정거리로 전락했다.

더욱 기만적인 것은 사법시장의 고도화가 낳은 ‘감형 컨설팅’의 유행이다. 오늘날 성범죄나 경제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피해자 없는 감형 레시피’를 제공하는 법률 브로커들을 만난다.

이들 변호사는 반성문 대필, 기부금 영수증 제출, 양형기준의 허점을 파고드는 꼼수 처방을 패키지로 판매한다. 진심 어린 사죄와 피해 회복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형화된 법적 서류가 들어차고, 재판부는 그 서류의 양을 근거로 형을 깎아준다. 피해자의 피눈물은 외면당한 채 가해자와 변호사가 짜고 치는 사법 기술의 연극 속에서 ‘정의’라는 단어는 철저히 모욕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도덕적 해이로 이어진다. 법을 고수하며 정직하게 사는 보통의 시민들은 사법제도 안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무력감을 느낀다.

반면 법을 교묘하게 비틀 줄 아는 법조 기술자와 그 기술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강자들은 법망 위를 유유히 걸어다닌다. 돈이 정의의 유무를 결정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굴레는 시간이 흐를수록 정교해질 뿐이다. 국민의 사법 불신이 극에 달한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회는 법치주의의 탈을 쓴 ‘법조 기술자들의 지배 사회’에 가깝다.

토머스 모어가 설계한 유토피아의 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조항은 몇 개 되지 않았고 일반시민이라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변호사라는 중간 대리인이 금지되었기에 모든 시민이 자신의 억울함을 판사에게 직접 설명했다.

교묘한 말장난으로 본질을 흐리는 자가 없어야만 판사가 당사자의 진심과 정황을 보고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가장 단순하고 상식적인 해석이 가장 정의롭다는 사법의 본질을 꿰뚫은 통찰이었다.

법이 기술이 되고 정의가 자본에 매수되는 오늘날 “변호사가 없는 사회”를 꿈꿨던 모어의 외침은 단순한 500년전의 판타지가 아니다. 그것은 상식과 공정을 잃어버린 현대 사법제도의 심장을 겨누는 가장 강력하고 시급한 경고장이다.

법을 다루는 자들이 스스로 악마가 되기를 자처할 때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매일 법정 안팎에서 목격하고 있다. 법의 문턱을 낮추고 법조기술자들의 독점을 깨부수지 않는 한, 정의는 결코 상식의 언어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출처 : 로리더(https://www.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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