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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완 교수] 형사사법의 예측가능성과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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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6-10-0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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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의 예측가능성과 통제>

‘이현령비현령’. 형사사법의 어두운 단면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같은 법조문도 누가, 어떤 맥락에서 적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면 법은 시민의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규범이 아니라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의 재량에 좌우되는 도구가 된다.

헌법 제13조 제1항에서 파생되는 죄형법정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명확성의 원칙이다. 형벌 법규는 국민이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 미리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형벌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막고 시민이 법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추상적 법률용어가 위헌인 것은 아니다. 현실의 모든 행위를 법률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추상적 문언이 판례와 해석을 통해 어디까지 구체화되고, 수사와 재판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느냐이다.

대표적 사례가 업무방해죄다. 형법 제314조의 ‘위력’은 물리력뿐 아니라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ㆍ혼란하게 할 만한 유형ㆍ무형의 세력을 포함한다고 대법원은 해석해 왔다. 그렇다고 항의ㆍ집회ㆍ파업 등이 자동으로 업무방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나 노동3권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행위의 목적과 수단, 실제 업무방해의 정도, 상대방의 자유의사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 압박 같은 무형의 요소까지 ‘위력’에 포함될 수 있다면 시민의 입장에서는 보호받아야 할 의사표현과 형사처벌 대상인 업무방해를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법원의 엄격한 판단은 대체로 수사가 시작된 뒤에 이루어지므로 수사 초기에는 훨씬 넓은 의심의 영역이 작동할 위험이 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법원은 단순히 공무원이 부당한 직무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일반적 직무권한을 실질적ㆍ구체적으로 위법ㆍ부당하게 행사해 다른 사람에게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구체적 권리행사를 방해해야 한다고 제한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안전장치지만, 시민이 법률 조문만 읽고 형사처벌의 경계를 명확히 알 수 있는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배임죄 역시 예측가능성이 문제되는 영역이다. 경영 판단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므로 단순히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대법원도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려면 단순한 손해 발생이나 주의의무 위반을 넘어 판단의 경위와 동기,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

따라서 핵심은 배임죄의 전면적 폐지나 존치라는 이분법이 아니다. 합리적인 위험 감수에 따른 경영실패와 사익을 위한 의도적 재산 침해를 형사법이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구별하느냐가 중요하다. 형사법의 개입이 지나치게 넓으면 기업의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고, 반대로 고의적 사익 추구를 민사책임만으로 처리하면 회사와 주주의 재산을 보호하기 어려울 수 있다.

모욕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제7조 등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형벌권의 경계가 문제된다. 여기서도 추상적 구성요건을 모두 배척하기보다 어떤 표현과 행위가 타인의 권리나 공공의 안전을 침해하는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그 범위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큰 문제는 법원의 사후적 통제만으로는 수사 과정의 피해를 모두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장기간의 수사, 자료 확보, 언론보도와 사회적 의혹의 확산 등은 무죄판결 이전에도 개인과 기업에 상당한 비용과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수사기관이 포괄적 의혹을 근거로 광범위한 자료를 확보하거나 피의사실이 외부로 유출되면 평판과 거래관계가 훼손될 수 있으며, 훗날 무죄가 선고돼도 잃어버린 기회와 명예가 완전히 회복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실질적인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재판 단계의 무죄판결뿐 아니라 수사 개시와 강제수사 단계의 통제가 중요하다. 해법 역시 특정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나 불신의 문제를 넘어 제도 자체를 개선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첫째, 형벌 법규를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업무방해죄의 경우 보호하려는 법익과 처벌 대상 행위를 명확히 하고, 단순한 불편과 실제 업무수행의 침해를 구별해야 한다. ‘위력’을 단순히 물리력으로 한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하므로, 정보시스템 교란이나 집단적 강압처럼 비물리적 수단에 의한 실질적 침해까지 객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배임죄에서는 단순한 경영실패와 의도적인 재산상 침해를 구별하고, 합리적인 정보수집과 검토 및 적법한 의사결정 절차를 거친 경영 판단에 대해 사후적 결과만으로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직권남용죄도 정책적ㆍ직무상 판단의 실패와 형사처벌 대상인 권한 남용을 구별하도록 구성요건과 판례법리를 명료하게 정비해야 한다. 대법원이 요구하는 ‘실질적ㆍ구체적 위법성’과 ‘의무 없는 일의 강요 또는 구체적 권리행사의 방해’가 수사와 기소단계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 강제수사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 영장을 발부할 때 어떤 범죄의 어떤 구성요건을 의심하는지,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사실은 무엇인지, 왜 해당 자료가 필요한지, 압수 범위가 과도하지 않은지를 엄격히 따져야 한다. 사후적인 무죄판결만으로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기본권 침해를 모두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피의사실공표와 수사정보 유출에 대한 통제도 실효성 있게 작동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더라도 법원의 판단을 받지 않은 사람의 인격권과 방어권이 무제한적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형사사법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처벌하느냐가 아니라 국가가 시민에게 어디까지 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얼마나 명확하게 정해 놓았느냐에 있다. 법이 명확성을 잃고 판례와 수사기관의 해석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시민은 법을 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해석을 두려워하며 행동하게 된다.

우리 형사사법체계가 모든 사건에서 자의적으로 작동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법원은 업무방해죄의 ‘위력’, 직권남용죄의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배임죄의 고의와 경영 판단 등에 관해 형사책임을 제한하는 여러 기준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후적 법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수사단계의 위험까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특정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는 제도 개혁이다. 입법자는 형벌 법규를 구체화하고, 법원은 강제수사 초기부터 엄격하게 심사하며, 수사기관은 혐의의 개연성과 수사의 필요성을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 피의사실 유출에는 실질적인 책임도 따라야 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법은 법치주의의 법이 아니다. 시민이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범죄가 되는지 알 수 있어야 법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 된다. 형사사법의 진정한 개혁은 범죄를 더 많이 처벌하는 데서가 아니라 국가가 시민을 처벌할 수 있는 경계를 스스로 더 엄격하게 묶는 데서 시작된다.

출처 : 로리더(https://www.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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