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정완 교수]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말의 함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6-09-21 13:30본문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말의 함정>
정치적 위기나 국정 실패의 기로에 선 지도자들이 국민 앞에서 자주 꺼내드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는 식의 고백이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낮추는 이 한마디는 얼핏 보면 최고권력자가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겸손한 태도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운영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진정한 책임은 자신을 낮추는 말의 크기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는 표현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의 주체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국가정책의 실패나 인사 논란, 정무적 판단의 오류에는 구체적인 과정과 원인이 존재한다. 누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 의사결정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제도와 시스템의 어느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지도자 개인의 ‘부족함’으로 돌려버리면 이런 구체적 질문이 사라질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보다 “지도자가 부족했다”는 감정적 결론만 남기 때문이다. 책임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정작 책임의 내용은 선명해지지 않는 역설이 발생한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단순히 “내가 부족했다”는 고백이 아니라 “무엇을 잘못했고, 왜 잘못했고,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며, 다시는 어떻게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공적인 실패를 개인의 덕목 문제로만 설명해서도 안 된다. 정부와 국가기관의 결정은 한사람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조직과 관료, 참모, 법과 제도, 의사결정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중대한 국정실패일수록 개인의 잘못과 함께 구조적인 원인을 살펴야 한다. 소통이 부족했다면 소통구조를 고쳐야 하고, 인사검증에 문제가 있었다면 검증시스템을 보완해야 하며, 정책결정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과정자체를 점검해야 한다.
실제로 공적 사과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강도가 아니라 후속 조치다. 사과에 대한 연구에서도 책임인정, 후회와 공감의 표현, 보상, 재발방지 약속 등이 중요한 요소로 제시된다. 최근 실제 공적 사과에서도 책임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대응체계를 마련하거나 재발방지책을 제시하는 방식이 함께 나타난다.
그렇다고 지도자가 “제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최고책임자가 자신의 책임을 먼저 인정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문제는 그 말이 책임의 출발점이 되어야지 책임의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하고, 잘못된 결정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제도적으로 고칠 부분은 고쳐야 한다.
국민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사과를 이용해서는 안 되지만, 반대로 진정한 사과의 가능성까지 의심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의 관계다. 고개를 숙인 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사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반면 구체적 설명과 책임있는 조치, 재발방지책이 뒤따른다면 짧은 한마디의 사과도 공적 책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도자가 위기 때마다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국민이 납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다. 국민은 이제 추상적인 반성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감정적인 호소보다 사실관계를 알고 싶어하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보다 무엇이 바뀌는지를 확인하려 한다.
진정으로 책임지는 지도자라면 자신을 낮추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내가 부족했다”는 말 다음에 반드시 “무엇이 잘못됐는지 국민께 설명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잘못된 부분을 이렇게 고치겠다”고 밝혀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를 국민 앞에서 검증받아야 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의 책임은 개인적 참회가 아니다. 그것은 공적인 설명과 조치, 그리고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책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며,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는 지도자일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는 말은 책임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진짜 책임은 고개를 숙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밝히고,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분명히 하고,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국민 앞에 제시하는 데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출처 : 로리더(http://www.lawleader.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