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정완 교수] 경술국치, 역사의 망각은 비극을 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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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6-08-31 17:01본문
<역사의 망각은 비극을 복제한다>
1910년 8월 29일은 대한제국의 주권이 완전히 소멸한 날이다. 순종황제의 칙유와 총리대신 이완용의 서명으로 공포된 한일병합조약은 500년 사직의 종말이자 35년에 걸친 참혹한 식민지배의 서막이었다.
역사는 이날을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는 뜻의 경술국치로 기록한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치욕의 무게를 얼마나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나라를 빼앗긴 날의 아픔은 빛을 되찾은 광복의 환호에 가려져, 매년 8월의 끝자락에서 박제된 역사적 사실로만 간신히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경술국치는 결코 우연히 찾아온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무능한 권력층의 부패, 국제정세에 대한 처절한 무지, 그리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던 국력의 부재가 맞물려 만들어낸 필연적 비극이었다.
당시 조선의 지배층은 급변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우물 안에서 기득권 싸움에 골몰하는 사이, 열강들은 한반도를 거대한 장기판의 말로 취급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미국과 영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했고, 조선은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되었다.
외교권이 박탈되고 군대가 해산되는 순간까지도 지배층은 안일했다. 결국 나라를 지킨 것은 조정을 가득 채운 고관대작들이 아니라 이름 없는 의병들과 전 재산을 바쳐 만주로 떠난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이 참혹한 역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첫 번째 교훈은 강대국의 선의에 국가의 운명을 의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동맹과 외교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자국을 지킬 실질적인 국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국민적 결속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대체 불가능한 힘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평화는 구걸에 불과하며, 그 구걸의 끝은 언제나 파멸이었다는 것을 경술국치는 웅변하고 있다.
두 번째 교훈은 철저한 유비무환의 태도다. 구한말의 비극은 다가오는 위기를 보면서도 ‘설마 나라가 망하겠느냐’는 안일함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ㆍ문화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는 여전히 최고조에 달해 있다.
미ㆍ중 패권경쟁의 심화, 북한의 지속적 핵 위협, 글로벌공급망 재편 등은 언제든 우리를 다시 시험대에 올릴 수 있다. 과거의 지배층처럼 이념적 갈등에 매몰되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격변하는 세계 정세를 외면한다면, 역사는 언제든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보복할 것이다. 평화로울 때 위기를 대비하는 자만이 주권을 영속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도록 선고받는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은 경술국치일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설명한다.
치욕스러운 역사라고 해서 외면하거나 잊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아픔을 송곳처럼 가슴에 새기고,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슬픔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 다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나라를 만드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빼앗겼던 선조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후손들에게 당당한 미래를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경술국치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엄중한 경고장이다.
출처 : https://www.lawlead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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