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정완 교수] 마키아벨리즘을 넘어야 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21회 작성일 26-07-24 14:27본문
<마키아벨리즘을 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정치를 가장 현실적으로 분석한 고전이다. 그는 인간을 이상적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은 이익 앞에서 쉽게 변하고, 권력은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군주는 필요할 때는 사자처럼 강하고, 때로는 여우처럼 영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현실주의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통치술이었다.
문제는 이 통치술이 시대를 넘어 하나의 정치문화로 굳어질 때 발생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며, 국민을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 정치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경계해야 할 마키아벨리즘이다.
우리 정치사에도 이러한 모습은 적지 않았다. 국가 발전과 민주화,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앞세워 강력한 권력 행사와 정치적 타협, 때로는 극단적 대결이 반복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국가 발전이라는 성과를 가져왔고, 어떤 경우에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승자독식의 정치문화, 극심한 진영대립, 권력 집중, 절차보다 결과를 앞세우는 관행이라는 부작용도 함께 남겼다.
정치는 원래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상대를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정치는 협의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법과 제도는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국민은 정책을 평가하기보다 진영을 선택하는데 익숙해진다. 선거가 끝나도 갈등은 끝나지 않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설 때마다 이전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회적 비용은 커지고 국가의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즘의 가장 큰 부작용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정치인이 국민보다 권력을 우선한다고 느끼는 순간 시민은 정치 자체를 불신하게 된다. 공약은 믿지 않고, 정책도 의심하며, 모든 정치적 행위를 권력 계산으로 해석하게 된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권력이 아니라 신뢰인데, 마키아벨리즘은 그 신뢰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이제는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16세기는 정보를 통제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모든 것이 공개된다. 언론과 시민사회, 인터넷과 SNS를 통해 권력의 결정 과정은 실시간으로 검증된다. 과거처럼 비밀스러운 정치공학이나 권모술수만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현대정치에서 가장 강한 권력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이며, 가장 오래가는 리더십은 권위가 아니라 정당성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마키아벨리즘을 대신해야 하는가.
첫째는 절차를 존중하는 정치다. 정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결정 과정은 더욱 중요하다. 국민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이라도 충분한 설명과 공정한 절차를 거쳤다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좋은 정책이라도 밀실에서 결정되거나 법과 원칙을 무시했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둘째는 협치와 타협을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강한 지도자를 선호해 왔다. 그러나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혼자 결정하는 리더보다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는 리더가 더 큰 성과를 낸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정치보다 상대와 합의를 만들어내는 정치가 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셋째는 제도가 사람보다 강해야 한다. 특정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는 정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당의 민주성을 높이고, 국회의 협의기능을 강화하며,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견제 장치를 충실히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지도자를 기다리는 것보다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함, 위기에서 결단하는 용기,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자세는 오늘날에도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 현실주의는 법치주의와 민주적 절차, 국민에 대한 책임이라는 원칙 위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현실주의가 원칙을 무너뜨리는 순간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권모술수가 된다.
대한민국은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정치의 기준은 누가 더 영리하게 권력을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책임있게 권력을 행사하느냐가 되어야 한다. 승리하는 정치보다 신뢰받는 정치, 대결의 정치보다 협력의 정치, 권모술수의 정치보다 원칙의 정치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혼란의 시대에 필요한 해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군주가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다. 이제는 마키아벨리즘을 정치의 미덕으로 소비하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권력을 오래 유지하는 기술보다 국민의 신뢰를 오래 유지하는 정치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안전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s://www.lawlead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571
관련링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