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 커뮤니티
  • News & Event

[컬럼-정형근 교수] 전두환시대, 이유도 모른채 쫓겨난 한 8급 공무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1,517회 작성일 21-11-24 14:22

본문

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4c9c23c0-24a9-434a-a4cf-7baa9492235a.jpg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등 신군부 세력이 정승화 육군 참모 총장을 연행, 조사하는 사실을 호외 보도한 한국일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원고는 인천에 있는 동사무소에서 8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1980년 7월 12일 8시 30분께 구청장실로 불려갔다. 구청장은 상부 명령이니 이유는 묻지 말고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하였다. 이에 원고는 신분보장을 받는 공무원이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사표를 내느냐며 항의하고 그 자리에서 사표를 내지 않았다. 원고가 동사무소로 와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9시 30분께 구 행정계장이 찾아와서 10시 30분까지는 사표를 제출해야 한다고 재촉하였다. 그리고 사표를 제출하더라도 단지 형식에 불과하고 구청장이 선별해서 선처할 것이니 걱정말라고 했다. 원고는 사직서를 내더라도 사직처리가 되지 않을 거라고 믿고 행정계장이 시킨 대로 가정사정에 의하여 사직한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그 후 원고는 인천시 전 직원이 사직원을 일괄 제출한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원고가 사표를 제출한 날 오전 11시 뉴스 시간에 사표를 낸 공무원은 모두 숙정되었다는 보도를 듣게 되었다. 그는 사표 철회를 통보하기 위하여 구청담당자에게 연락하려 하였으나, 마침 그날이 토요일이어서 구청직원들이 월미도로 자연보호 캠페인을 나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시 인천시청 인사계로 찾아가 인사계장을 만나 사표의 반려를 요구하였다. 그 계장이 사표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고 하자, 구청 직원들이 자연보호캠페인을 하던 월미도까지 찾아가 구청 행정계장, 총무과장 등에게 사표를 반려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원고가 제출한 사표를 구청장에게 주어 처리하였으니 구청장을 찾아가라고 하였다.

원고는 그날 밤 자정 구청장의 집으로 찾아가 사표를 내놓으라며 항의를 하였다. 구청장은 오늘은 토요일이니 월요일 아침에 구청장실로 오면 사표를 누가 갖고 있는지 확인해서 찾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원고를 돌려보냈다. 원고는 월요일 날 아침에 구청장실로 찾아갔으나, 오후 5시에 다시 오라고 하여 원고가 위 약속시간에 구청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보안사 요원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원고를 에워싼 가운데 구청장은 한 번 수리된 사표는 반려할 수 없다고 했다. 원고는 사표 처리가 위법하다고 소청심사 청구를 하여 불복하였으나, 인천경찰서 형사들이 소청을 취하하라면서 원고에게 감시와 협박을 하였다. 심지어 원고의 가족까지 경찰서에 소환하여 협박하고 회유하였다. 원고는 어쩔 수 없이 소청청구를 취하하였다.

나중에 공직자 숙정작업을 주도한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내란죄 등 범죄사실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원고는 전두환 신군부가 공무원숙정 차원에서 강압에 의해 사직할 의사도 없는데 강제로 사표를 제출하도록 하여 처리한 면직처분은 당연무효라는 재판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2001년 전두환 신군부가 1979년 12·12 이후 전개된 정권장악 과정에서 발생한 공직자 숙정작업 역시 강압적으로 추진된 것으로서 내란죄를 구성하는 폭동의 한 사실로 인정하였다. 그러면서도 1980년의 공직자숙정계획의 일환으로 일괄사표의 제출과 선별수리의 형식으로 공무원에 대한 의원면직처분이 이루어진 경우, 사직원 제출행위가 강압에 의하여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결과 원고는 패소했다.

필자가 1980년 공무원으로 재직하였던 기관에서는 새벽에 비상소집을 한 후 전 직원에게 사표를 제출하도록 했다. 사표제출을 거부한 사람은 파면당했다. 대법원은 군사정권에 굴종하여 조작된 사건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사형도 선고하면서 국민에게는 그런 정권과 맞서 싸우는 초인이 되라고 한다. 그렇게 정권유지를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었던 최악의 권위주의 정권의 주역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정형근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