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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정형근 교수님-성폭행 자백했지만 무죄석방된 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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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2,359회 작성일 21-02-1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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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자백했지만 무죄석방된 미란다 

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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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3월 2일 토요일 밤 11시 무렵,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극장 매점에서 일을 마친 피해자(18세)가 귀가 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납치됐다. 피해자는 피닉스 부근의 사막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은 23세 멕시코계 미국인 에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였다. 경찰은 미란다를 미성년자 납치, 강간 혐의로 체포하였다. 미란다는 조사과정에서 범행을 인정하고 진술서에 서명도 했다. 경찰은 미란다가 전과자였기에 피의자의 권리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여기고, 어떤 법적인 권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 후 미란다는 재판에 넘겨졌다. 70세가 넘은 앨빈 무어(Alvin Moor)가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됐다. 변호사는 경찰이 미란다를 조사할 때 진술거부권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만을 문제 삼았다. 그는 피의자에게 보장된 권리를 고지받지 않은 상태에서 한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리조나 지방법원은 미란다의 진술서를 증거로 인정하여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1966년 6월 13일 대법관 중 찬성 5인, 반대 4인으로 불과 1표 차이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 판결의 다수의견은 "경찰이 미란다를 조사하기 전에 법적 권리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확보한 자백과 진술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워런(Warren) 대법원장이 이끄는 연방대법원은 형사절차의 혁명과도 같은 미란다 판결로 경찰의 위법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그 후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로 시작하는 미란다 경고문(Miranda Warning)이 생겨났다. 필자가 법대 다닐 때 "미란다는 석방된 후 거리에서 자신의 무죄 판결문을 팔고 있다가 그 돈을 노린 노상강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들었다. 미란다가 법정에서는 무죄였지만, 천벌을 받았구나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미란다 경고문'이 적힌 카드에 사인을 하여 팔기도 하였고, 1976년 술집에서 취객과 시비 끝에 살해됐다.

우리 헌법 역시 진술거부권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알리도록 한다. 법원도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고 한 체포행위는 위법하다고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진술거부권을 고지할 때 진술을 하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알려야 한다. 그럼에도 진술을 거부한 자는 거의 없다. 형법상 양형조건 중에는 '범행 후의 정황'이 있는데, 범행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진술을 거부하면 반성도 하지 않는 것이 되어 불리한 양형요소가 될 수 있다. 누구든지 진술을 거부하거나 범행을 부인할 권리가 있는데, 법원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불리한 판결을 하는 것은 진술거부권을 부정하는 위헌적인 재판이라 할 수 있다.

법은 죄 없는 자가 억울하게 처벌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인다. 무고한 자를 만들지 않고자 미란다와 같은 흉악범을 석방하여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미란다가 석방되어 거리를 활보할 때, 그 피해자는 두려움과 악몽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우리 헌법은 1987년에야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에서의 진술권과 구조청구권을 인정했다. 그리고 2005년 범죄피해자보호법을 제정하였고, 성폭력처벌법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국선변호사를 선정해 주도록 한다.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사를 붙여주듯, 모든 피해자에게도 국선변호사를 선임해 주어 억울함을 풀도록 해야 한다. 범죄자가 보호받는 만큼, 그 피해자도 일상을 회복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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