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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완 교수] 주권은 추모가 아니라 제도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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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합행정실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26-06-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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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은 추모가 아니라 제도로 증명된다>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의 한 도로에서 중학생 신효순ㆍ심미선 양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던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은 그 자리에서 끝났다. 사건은 단순한 교통사고로 기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은 이 비극을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회적 사건으로 만들었다.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사고 자체만이 아니었다. 미군 군사법원은 사고에 연루된 미군 병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많은 국민들은 자신들의 법 감정과 상식이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 순간 국민들이 목격한 것은 두 소녀의 죽음만이 아니었다. 국가의 주권, 사법 정의, 그리고 한미동맹의 불균형에 대한 불편한 현실이었다.

2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당시의 분노를 얼마나 제도적 변화로 연결했는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되었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주권은 경제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가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고와 범죄가 발생했을 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가 주권의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협정은 여러 차례 개선되었지만 재판권, 신병인도, 기지 환경오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동맹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맹은 상호 존중 위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어느 국가도 자국민의 권익보다 동맹 자체를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동맹을 비판없이 신성시하는 태도 역시 건강한 민주국가의 자세는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안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숨진 곳은 전쟁터가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이 걷는 길이었다. 그 사건이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군사적 필요가 시민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군사훈련장 인근 주민들은 소음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접경지역 주민들은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군용차량 이동 경로의 안전대책, 주민보호시설, 사고예방체계 역시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국민의 안전을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관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안보는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체제가 아니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체제다.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안보는 존재할 수 없다.

또 하나 되새겨야 할 것은 기억의 문제다. 효순이와 미선이 사건은 촛불집회가 한국 시민사회의 중요한 정치문화로 자리잡는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당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해 모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생명의 존엄성과 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사건의 본질보다 진영의 해석에 더 익숙해졌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반미의 역사로만 기억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과거의 불행한 사고 정도로 축소한다. 그러나 두 해석 모두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반미도 친미도 아니다. 강대국과의 관계 속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주권을 지켜낼 수 있는 국가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또한 국가적 필요가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관한 문제다.

역사는 추모비를 세운다고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이 던진 질문을 현재의 제도와 정책 속에서 계속 되묻는 사회만이 역사를 기억할 수 있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이름은 과거의 비극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그 이름은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묻는 질문이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는 강한 국가가 아니다. 국민이 납득할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국가는 주권국가라 말하기 어렵다.

24년 전 두 소녀의 죽음 앞에서 대한민국은 분노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다. 냉정한 성찰과 제도적 개선이다. 우리는 감정이 아니라 결과로 답해야 한다. 효순이와 미선이 이후, 우리는 정말 더 안전하고 더 정의로운 나라가 되었는가. 24년이 지난 오늘,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s://www.lawlead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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