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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쇠고기 수입문제는 법/과학 문명충돌의 한 예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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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재원 댓글 0건 조회 1,167회 작성일 08-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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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쇠고기 수입협의와 한미 FTA는 문명충돌의 한 예

안녕하세요!
DJ의 국민의 정부가 선언한 햇볕정책은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이솝우화의 해님과 바람의 경쟁에서 가져온 생각입니다. 어린 시절 읽는 우화와 고등학생 때까지 주입식으로 공부하는 교과서의 내용은 우리에게 거의 확고한 진리와 같은 개념으로 다가오는 상식들입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진입하여, 직장과 대학 등에서 경험을 하다 보면, 고등학교 교과서의 내용 중 참 많은 것이 잘못된 것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배우면 고교 교과서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는지 알게 되지만, 정작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는 분야는 여전히 교과서의 내용이 상식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햇볕정책에 관한 설명을 듣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순진한 사람을 봤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미국과 한국은 문화가 다릅니다. 하다못해 우리나라에서 살아도 남녀가 부부로 만나면 그 수십 년간의 경험 차이가 갈등을 낳는데 문화가 전혀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나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인터넷이 있고, 위성방송이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외국인이 연간 75만 명, 미국인 중 외국어를 배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0.1%입니다. 미국과 유럽인,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인과 외국 경험이 없는 미국에 막 도착한 중국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내려는 심리학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등 아시아의 문화가 미국의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것이 심리학 실험에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가 지금에야 연구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실험대상과 연구자 사이에 책장을 두고, 일부는 실험대상자만이 볼 수 있고, 나머지는 연구자도 볼 수 있는 상태로 해 두었습니다. 딱 한 종류의 사물만 두 개를 두었는데, 하나는 연구자와 실험대상자가 모두 볼 수 있는 칸에 두었고, 나머지는 오직 실험대상자만이 볼 수 있는 칸에 두었습니다.

연구자가 실험대상자에게 두 개가 있는 사물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질문한 사물이 두개가 있는데 어느 것을 묻느냐고 반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니까, 연구자가 칸이 막혀 있어서 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중국에서 막 미국에 도착한 유학생들은 딱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연구자도 볼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실험에선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은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칸이 막혀 있어서 상대방이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칸이 막혀 있지 않아 연구자도 볼 수 있는 것을 묻는 것이라 단정하고 답을 한 것입니다.

실험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심리학이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가 되겠지만, 이처럼 문화가 다르면 심리적 반응도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007년에야 처음으로 이런 비교심리학 실험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람 사는 게 모두 똑같지 않으냐?" "다른 것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지."하면서 차이점을 무시하던지, 아니면 모두가 다 다르다고 하면서 비교문화 연구를 가볍게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는 미국의 논문결과를 따라가던지, 아니면 실험결과 수치를 일치시키기 위해 심리학 실험의 설문을 바꾸는 방법으로 한국화된 실험을 한다는 변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심리학 책들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면서 마치 미국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이 될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설문사항을 가지고 정확한 비교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한국과 미국의 문화는 어떻게 다른지 전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미국의 연구결과를 기다리지만, 미국이 한국에 전혀 관심이 없고, 누구도 연구비를 제공하지 않으니 백 년 넘게 미국과 교류해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국과 호주 등지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남성 호르몬 수치의 차이 때문에 심리의 차이, 남자 아기와 여자 아기를 임신한 여성의 남성 호르몬 수치의 차이 때문에 심리의 차이가 연구되어 발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구비만 있다면, 이렇게 이루어진 서양의 남성 호르몬 수치와, 우리 한국인의 남녀의 남성 호르몬 수치, 근육량 등을 조사한다면 어떠한 심리적 차이가 있는지 호르몬 수치로도 설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굳이 연구를 해 보지 않아도, 육안에 의한 조사를 해도 육식을 많이 하고, 근육이 많으며, 병원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비만환자 비율이 35%에 달하는 미국의 남성과 여성에 비해 체구가 작고 채식인 쌀을 주식으로 하여 비만환자 비율이 1% 미만인 한국의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차이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돈이 있다면 연구비를 제공하고, 한국 남성과 여성의 남성 호르몬 수치를 검출하는 것만으로, 관련 연구자가 학회지에 보고할 만한 유의미한 논문을 만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는 "깨진 창문 이론"이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 거리에 창문을 열어놓은 차와 창문을 닫아 놓은 차를 두었을 때, 차량도난 사고의 비율이 어떻게 다른지를 실험한 것입니다.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이 이론을 뉴욕 지하철의 대형낙서를 지우는 것으로 응용해서 범죄율이 낮아졌다는 것이 대표적인 "깨진 창문 이론"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과자를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성범죄자를 도시에서 쫓아내고, 약간의 학교폭력만 있어도 학교에서 쫓아내야만, 경찰이 조기에 간섭해서 처벌을 하고 사회에서 격리를 시켜야만 사회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미국의 범죄대처법으로 적용된 이론입니다. 미국은 사형수의 어머니는 자식을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여성조차도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에 비하면 보다 남성적입니다. 우리나라라고 하면 다수 어머니도 자식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그 자식을 버리진 않습니다.

성선설, 성악설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나 배웠습니다. 도덕정치, 덕치주의를 주장하는 공자의 유교에 의하면 성선설을 따르고,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들을 참 쉽게 믿습니다. 단골문화처럼 동네 사람이 아닌 사람에겐 열리지 않는 마음이 자신의 동네 사람, 이웃에겐 너무나 쉽게 열려서 형사범죄의 50%가 사기범죄일 정도로 사람을 잘 믿습니다.

반면에, 서양의 기독교 문화에선 성악설이 기본입니다. 도로에서 경찰이 차량을 세웠을 때, 운전자가 함부로 문을 열고 나가거나 하면 총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찰관들은 상대방이 총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방어적 입장에서 접근합니다. 또한, 상대방의 말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의심하고, 회의적으로 접근하는 비판적 사고가 미국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MIT의 석좌교수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수학자 존 내쉬의 죄수의 딜레마, 혹은 게임이론만 해도 기본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죄수를 대상으로 이론이 만들어집니다. 즉, 검사가 죄를 지은 공범을 처벌하려면, 둘을 격리시켜서 정보를 차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둘 다 이기주의에 빠져 자백을 하고 그 결과 처벌을 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린 시절 이솝우화의 해님과 바람의 우화를 읽어 온 우리 국민, 그리고 공자의 논어 등 성선설을 기본으로 형제, 이웃, 한민족 등이라고 서로 믿으면서 접근하는 우리 국민이 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조금의 잘못이라도 있으면 사회에서 격리하고 처벌해야만 사회가 안전할 수 있다는 "깨진 창문 이론"을 믿는 미국 국민, 성경의 성악설을 기본으로 비판적으로 상대방에 접근하는 미국 국민, 죄수의 딜레마 혹은 게임 이론에 의해 세계 경찰국가가 있어서 나쁜 국가를 처벌해야만 세계평화가 유지된다고 믿는 미국 국민이 있습니다.

참고로, 다신교인 그리스의 우화인 이솝우화를 성경을 신봉하는 미국인이 설화로 알고 있을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중세유럽의 암흑시대에는 오로지 수도원의 수도사들만이 그리스의 신화와 철학에 관한 책을 필사하고 보존할 수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관점에서 보면 상대방이 단점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로 문화가 다른 것뿐입니다. 어느 문화가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 바다로 갈라져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수백 년을 다르게 살아온 탓에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뿐입니다. 반미감정이나 반한감정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두려워하고 화가 날 뿐입니다. 서로의 정보가 격리되고 교류가 적어서 이해를 못 하고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는 것뿐입니다.

정말 제대로 된 외교관이라면, 미국 문화가 선진문화이니까 세계의 모든 나라가 미국 문화를 배우라는 조셉 나이 교수의 신자유주의 정치이론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에 대해서 설명을 할 것입니다. 문화는 상대적이라 어느 것이 전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빙하기와 간빙기를 겪으면서 토양이 비옥해져야만 풍부한 농경이 가능한데, 핀란드 등 북구 스칸디나비아 국가처럼 단 두 가지의 작물만이 자랄 수 있을 만큼 토양이 척박한 나라의 경우 바이킹과 같은 해적행위, 그리고 해적 남편이 가져온 것을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사회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농경민족처럼 토양이 비옥하여, 한반도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평야가 있다고 한다면 흉년이 와서 먹을 것이 없지 않은 이상 서로 나누어 먹는, 상부상조의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IMF시기 금 모으기를 하는 것처럼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국민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물론 다수가 그렇다는 것이지, 100%의 국민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로, 서양의 성경에서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음식에 관한 기적을 종교적 해석이 아닌, 나눔의 이익으로 해석하는 도올과 같은 분도 있더군요. 먹을 것을 감추고 있다가 모세가 먼저 자신이 먹을 것을 내 놓자, 사람들이 서로서로 먹을 것을 내 놓아서 그렇게 아사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지요.

또 다른 예를 들면, 성경에 게으른 자와 멀리하라는 말에 따라서 미국은 3개 이상의 파트타임 잡을 갖지 않으면 복지혜택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복지란 게으른 자라는 부정적인 느낌을 지닌 단어입니다. 물론, 미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3배나 많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 비율의 정부 예산을 연금과 건강보험 지원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민의 14% 이상이 건강보험이 없고, 연간 200만 원은 병원비를 자비로 지급해야만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가 있는데, 평균임금과 평균지출의 차이가 연간 200만 원이니까, 평균 미만의 소득을 가진 미국인은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에, 상부상조와 홍익인간 등 서로 돕는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는 복지란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입니다. 사회 안정망 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고,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일반적인 문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에게 대포를 쏘거나 총을 쏘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길 믿습니다. 유럽의 혁명을 레 미제라블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익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사법부에 의해서 헌법상 국민의 저항권행사로 인정되어 국민의 저항권 행사가 합법이며, 합헌이라는 판례가 확립되어 있기도 합니다.

반면에, 미국은 1960년대 반전운동에 대해서,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명령을 내립니다. 사망자가 발생하였지만, 미국은 정권이 바뀌지도 않았고, 레이건 전 대통령은 미국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존경을 받습니다. 미국의 공영방송국인 PBS의 1960년대라는 다큐멘터리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선조인 필 그램 선조에 의해서 국가에 의해서 지배를 받겠다는 동의가 이루어진 유일한 나라입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도착한 영국의 왕이 허락하지 않은 땅인 보스턴 근교 케이프 코드에 정착하면서 지배를 받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총기를 소지할 권리는 기본권이지만,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수정헌법에 규정은 되어 있지만, 어떤 변호사도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 역사가 없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행복추구권은 헌법소원에서 흔한 소송의 근거가 되며, 이를 인정한 헌법 판례도 많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법률 문화, 헌법 문화가 이처럼 다릅니다.

군중이 모이는 문화를 살펴봅시다. 미국은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가 86년 만에 처음으로 베이브 루스(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야구 경기에서 우승합니다. 축하를 하러 모인 보스턴 시민들에게 보스턴 경찰은 해산을 명령합니다. 곧이어, 평범한 대학생, 평범한 미국시민인 사람들이 은행 창문을 깨고, 도로변에 주차된 차를 뒤집으며 순식간에 폭도로 변합니다. 고무총탄을 사용한 경찰에 의해서 한 여대생이 눈에 고무총탄을 맞아 사망합니다. 시위도 아니었고, 86년 만에 우승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시민이 총을 맞아 죽었지만, 정부가 바뀌기는커녕 제대로 된 사과성명조차 없습니다. 단지 법적 소송을 통해서 화해로 손해배상을 하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수많은 시민이 모였고, 역사상 처음 4강에 진출했지만 어떤 불상사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군중이 모이기만 하면 폭력사태가 일어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2002 월드컵 때의 단체응원 문화와, 효순이 미선양 추모 촛불집회, 탄핵반대 촛불 집회, 그리고 최근의 촛불집회처럼 쓰레기 정리까지 다 할 정도로 질서있는 모임이 가능합니다.

미국 내의 시위문화와 군중의 문화를 기준으로 한국의 촛불집회와 2002 월드컵의 단체응원을 바라보면 겁이 나고 두려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초식 동물인 소에게 육식을 시키거나,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자라거나 외양간에서 자랄 소를 생각하는 우리 국민에게 공장에서 사육되는 미국 소를 보면 당연히 두렵고 화가 날 것입니다. 이런 문화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문화는 우월하고, 선진문화이고, 한국의 문화는 열등하고, 후진문화라고 보는 문화절대주의자들과 문화는 상대적이고 서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미국의 문화를 기준으로 경찰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잘못이고, 저지선을 뚫으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하십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 정서로는 정당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이며, 미국 헌법상 존재하지 않는, 우리가 법문화를 가져온 유럽의 혁명역사상 국민에게 폭력을 가하고 총격을 가하는 정권은 무너진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 상황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를 뿐입니다.

훌리건 등으로 불리는 유럽의 축구광들이 폭력사태를 일으키는 것과 유럽의 경찰의 대응, 그리고 자기 지역의 야구팀이 우승했다고 축하하는 군중에게 해산명령을 어겼다고,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군중에게 고무총탄을 사용해서 여대생이 사망한 미국의 경찰의 대응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유럽에선 정권이 넘어가는 것이고, 왕정이 몰락하는 신호탄이 되는 국민의 사망이, 미국에선 법적인 손해배상만 하면 되는 하나의 사망사건에 불과한 것입니다. 문화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혹자는 시위대가 경찰의 저지선을 뚫거나 차도를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하시지만, 우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의하면, 미국의 헌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국민의 저항권과 시민 불복종의 권리가 존재합니다. 광주의 5.18 민주화 운동이 합법이고 합헌이니까요.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는 수용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분명히 저항권과 시민 불복종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의 저항권행사라고 본다면, 이번 촛불시위를 불법이라고 할 수가 없겠지요.

제가 이번 한미 쇠고기 협의의 문제가 문명충돌의 작은 예라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서로 법률문화가 다르고, 헌법상의 권리도 다릅니다. 시위문화도 다르고, 군중의 축제문화도 다릅니다.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면 상대방이 단점으로 보이지만, 단지 의견이 다른 것뿐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문화절대주의의 입장에서 무조건 미국 문화가 우월하고 선진문화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 문화 중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없잖아 있겠지만,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식을 시킨다거나, 국민의 14%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거나, 일주일에 파트타임 직업을 세 개 이상 갖지 않으면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우리가 배울 장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깨진 창문 이론"(Broken Window Theory)에 의해서 세계의 악인 국가들을 처벌하고, 게임이론과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 의해서 악과는 협상의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하는 미국의 네오콘들이나, 협상가의 목숨을 포함해서 협상하지 못할 것은 전혀 없다는 미국 법과대학원(로스쿨)의 협상교육을 받은 변호사 출신인 오바마 민주당 기대 대선후보나, 그리스의 우화라고 알려진 이솝우화의 해님과 바람의 경쟁에서 따온 햇볕정책이나 모두 하나의 다른 문화로서 존재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누구의 문화가 우월하고 선진문화이니 좀 더 배워라라는 식으로 문화절대주의의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추신) 우리는 해님과 달님이라고 하면, 섞은 동아줄을 타고 가다 떨어져 죽은 호랑이를 떠올리고, 단군 신화에서도 호랑이는 나쁘고, 곰은 웅녀가 되어 단군을 낳는 것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랑이에 쫓긴 남매가 해님과 달님이 되는 얘기이지요. 동생이 무섭다고 해서 누나가 바꾸어 졌다는 상부상조, 우애의 정이 넘치는 얘기가 아닙니까?

반면에, 미국의 중서부 지방의 한 인디언 부족의 경우, 평지에 우뚝쏟은 뾰족탑과 같은 산에 비슷한 설화가 있습니다. 곰에 쫓기던 일곱 자매가 산에 발자국을 내며 쫓아오는 곰을 피해 일곱 개의 별님이 되었다는 설화입니다. 미국인에게 곰은 음흉하거나 무섭다는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요.

쉽게 설명하면 곰 토템, 호랑이 토템 등 동물을 토템으로 믿는 부족들 간의 경쟁에서 비롯된 설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읽던 설화 중에 "옛날 옛적에 소를 잡아먹던 부족의 사람이 미쳐서 부모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서로 잡아먹었는데, 어느 곳에서 파를 발견하고, 파를 먹었더니 소로 보이던 부모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어서 식인의 풍습이 사라졌다."라는 것이 기억납니다. 초식 동물인 소에게 풀을 먹이자는 것을, 미국의 평균 소득자가 연간 200만 원 밖에 잉여소득이 없고, 미국의 전체 저축률이 마이너스이기 때문에 주식의 하나인 소의 물가가 올라가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살자고 소에게 값싼 동물의 부산물을 먹이는 것을 우리가 칭찬할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부가 정말 미국 국민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35%가 넘는 미국 비만환자들의 과잉소비를 막고, 에너지 절약 등의 방법으로 미국민의 저축률을 높여주어서, 푸른 목장에서 풀을 뜯고 사는, 미국인이 신앙하는 기독교의 신이 창조한 대로, 과학자들이 믿는 진화론에 의한 진화된 그대로의 소를 미국민이 좀 더 높은 가격을 주고 육식을 좀 덜 해서, 콜레스테롤 수치도 줄이고 장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만환자 비율이 1% 미만인 일본과 한국인들에게 미국이 좀 더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로, 미국의 소는 육식을 하기 때문에, 포화지방의 비율이 한국의 황소에 비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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