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영어 용어, 발음, 문법교육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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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재원 댓글 0건 조회 1,449회 작성일 08-04-05 00:00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학기엔 문법이랑 발음이랑 기초를 많이 다지고 있어요. 듣기도 굉장히
많이 향상이 된 것 같아요. 독서 속도가 빨라지니까 듣기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
아요. 마치 에스페란토어를 익히는 양 의미구 단위로 머리속에 집어넣으면
저 혼자서 알아서 이해가 되니까 번역에 별도로 시간을 쓰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어나 일본어.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쓰는 스와힐리어는 모음이 없으면 발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성대를 사용하지 않고 바람소리만을 이용하는 영어의 무성음이
없다고 그래요. 더구나 무성음이란 뜻의 "Unvoiced" 혹은 "Voiceless"란 소리를 낼듯
말듯 내는 것이 아닌데, 한국 사람들 귀엔 잘 들리지 않는 소리니까, 영단어의 끝에
있는 자음은 소리가 들릴 듯 말듯 내라 그렇게 가르친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 일본, 대만,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단어의 끝 소리를 내지 않아서
미국이나 인도유럽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터키 등 유럽인들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는 것이구요. 예를 들어" wet"는 웻이 아니라 웨하고 t라는 무성음을
발음해야 하는 것이죠. "sink"도 싱크가 아니라 싱하고 k 바람소리를 내야하는
것이구요. 문제는 이들 무성음이 한글에 없기 때문에 모음을 붙여서 성대를
사용해서 소리를 내다 보니까 미국이나 유럽인들 귀에는 다르게 들리는 것이죠.
"wet"라고 해도 웻이라 하면 "wed"랑 구분을 못해요. th등의 소리도 그렇구요.
발음훈련을 할 수 있는 캐나다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발견했는데 정말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자신의 발음을 그래프로 만들어서 주파수로 비교해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무성음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선생님들이 가르쳐 줄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무조건 받아쓰기를 하면 듣기실력이 좋아지지지만, 정작 말하기
는 달라지지 않으니까. 별도로 발음을 배워야 말할 수가 있는 것이구요. 50년 100
년이 지나도 그 선생님이 그 제자를 키워서 영어를 가르치니 한국이나 일본의
영어교육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이지요.
굳이 원어민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기초적인 발음과 문법
등을 일본식이 아닌 미국이나 혹은 인도유럽어족의 소리로 배우다면 말이죠.
그러다가 발견한 건데 우리가 한글을 우랄 알타이어 어족이라 배웠는데 이것이
아직 서양 학계의 검증을 거친게 아니라고 그래요. 몽골어 계열인 알타이어나,
러시아 혹은 그 변형인 핀란드, 헝가리어 처럼 우랄계에 속하는 것인지 아직도
논쟁중이라고 하는군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게 검증받지 않은 학설인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증거라는 것이 겨우 합성어의 사용(계란과자 등)과 모음조화 현상(양과 음의
모음끼리 사용한다는 것) 정도인데 나머지 글자나 발음 모두 다 전혀 다르거
든요. 어순이 주어/목적어/동사라는 것은 라틴어도 똑같데요. 결국 어순이
달라서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라틴어를 쓰는
로마 사람들도 영어를 잘 하잖아요. 인도유럽어족이나 기타 서양언어의
구분 기준과 한국과 일본의 언어는 서로 알아 들을 수 없는 별개의 소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영어 학습법도 전혀 달라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언어는 암기나 이해만으로 그치는 공부로써는 배울 수가 없고, 실생활에 쓸
정도로 훈련이 추가되어야만 하는 것 같아요. 한글을 떠올려서 번역하는
방식으로 영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아기가 되어서 모든 문장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 다시 머리에 새로운 문장을 집어 넣는 것이지요. 영어로 된
책을 번역이 아닌 영어식(의미구 단위로 머리에 집어 넣되 다시 재구성하지
않는 것)으로 집어넣을 수 있도록 독서를 새롭게 해주면, 점점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문화처럼 점점 가랑비에 젖어드는 것이지요. 몰입교육이 필요한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문화를 번역문이 아닌 그 나라 언어로 독서하는 습관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글쓰기 역시 일본/한국식 영어 작문이 아니라 영어독서를
한후 그에 관해서 말하기 혹은 글쓰기를 함으로써 내용있는 글쓰기를 배울
수가 있을 것 같구요.
언어학자들이 아무런 검증없이 서양의 이론들을 적용해서 별도의 언어교육
방법이 필요한 한/중/일/대만의 상황을 더 혼동시킨 것 같아요. 발음을 구사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란 거지요. 또한 일본식
문법용어의 사용이 더욱 이해를 어렵게 한 것도 있는 것 같구요. 성대를 사용
하지 않고, 모음을 사용하지 않고 소리를 내는 "unvoiced"를 무성음이라고 번역
해 사용하니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한국이나 일본어
에는 없는 개념이다 보니 일본사람들도 이해를 못하고 번역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만요.
결국 영어를 공부하는 왕도는 특정 표현이나 특정 문장을 외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본 독서량을 늘려서 미국인들 수준으로 영어책을 많이 읽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번역을 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거죠. 100
페이지를 읽어서 실생활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문장 한두개를 본능적으로
익히게 되는 것이 유일한 콩글리쉬 아닌 영어문장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해요.
아이들이 24개월때 30개 단어, 36개월에 1000개의 단어를 쓰다가 어느 순간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단계로 말을 하듯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문법과
단어를 암기해서 접근하기 보단, 기초부터 다져서 새로운 문화권에 다시 태어난
것 처럼 영어독서량을 늘려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시간이 없다며, 특정
표현이나 문장을 외우는 방법으로 접근하면 시간이 지나갈 수록 영어를 잊어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프리젠테이션용 표현과 토론용 표현을 별도로
외워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은 불필요한 암기력 낭비라는 것이지요.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영어 독서량을 늘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영어실력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작문법을
배워서 한글에서 영어로 글을 옮기긴 보단, 영어 독서를 하다가 좋은 표현을
반복적으로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글 쓸 때도 그러한 표현이 나오게 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언어학습법이 되는 것이지요. 마치 무조건 암기를 하기
보다는 7회독 8회독 하면서 소설 읽듯이 많이 읽어주면 자연스럽게 본능적
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한글로 경험한 것을 영어로 쓰기 보다는 영어로 된 영화를 보고 영화 관람평을
쓴다던지, 영어 소설을 보고 줄거리를 수학공식처럼 정리해 본다던지, 혹은
영어 판례를 읽으면서 각 문단의 첫줄, 주제문을 뽑아내서 목차를 정리해
본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영어 경험을 영어로 써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로 된 교과서적인, 아카데믹한 글을 많이 읽으면, 영어 글쓰기뿐만 아니라
한글 글쓰기도 표현이 다양해질 수 있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기존의 선생님
들이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100년이 가도 절대로 잘못된 발음이나 잘못된 문법
을 새로 배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영어로 된 발음책이나 문법책을 사서 공부 한다고 해도, 결국
번역하면서 일본식 발음용어나 문법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여전히 잘못된
영어를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해석되는, "although"나 "even though"를
양보의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부사 이렇게 외우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죠. 영어로는 대조관계를 표현한다는 뜻으로 "expressing contrast"이거든요.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때문에(because)가 아니라, 인과관계의 반대인 대조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because)비가 오기 때문에 소풍을 못갔다"는 인과관계를
나타내지만, "(even though)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소풍을 갔다"는 대조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니까요. 얼마나 일본식 문법용어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다른 예를 들면, "so that"을 결과용법이라 배우는 것이지요. 혼동되기 쉬우니까
"so"와 구분을 못한 일본이 엉터리로 문법용어를 만든 것이지요. 아예 "소데쓰"
라고 일본어로 만들어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어로는 "purpose"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즉, "(purpose)시험에 합격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는 두 문장이 "(so that)열심히 공부했다 so that 시험에 합격하기를 원해서"
라고 되는 것인데 결과용법으로 잘못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단어의 일본식 번역 역시 개념을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logic"의 경우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로지"라고 발음을 따와서
글자를 만드는 가차문자로 표현을 하는데, 일본은 사고방식이란 의미로
논리라고 번역을 합니다. 영어의 의미는 타당한 근거와 타당한 결과, 즉
모든 단계에서 타당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일본식 번역은 각자의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식의 나의 논리, 너의 논리라고 엉터리로 말해지는 것이 가능
하도록 만든 것이지요.
언어가 문화를 지배하는데, 이렇게 엉터리로 서양 문화가 수입되니까, 제멋
대로의 해석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한국/일본/중국/대만이 합리적, 객관적
이지 못하고 권위주의적, 주관주의적, 이중잣대를 사용을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도대체 합리나 논리가 무슨 개념인지 알지를 못하기 때문이지요.
발음에 대한 잣못된 지식 역시 심한 형편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는 "오"라는
발음이 없습니다. "오우"라고 하죠. 그리고 국제발음표기법으로는 장음과 단음
으로 표기되는 "beat"의 i발음과 "sit"의 i발음은 길게 짧게 하는 한국식 장단음
구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외국언어를 도입할 때, 한국어나 일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언어식으로 이해하여 가르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입니다.
영어로는 혀의 근육을 사용해서 긴장음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장음으로 아는
"beat"의 "이" 발음입니다. 긴장음이니까 진동음, 즉, 바이브레이션이 발생
합니다. 근육을 쓰다보면 손가락이 떨리듯이 말이죠.
반대로 "sit"의 경우에는 의식하지않고, 혀의 근육을 전혀 쓰지 않은채 "으"에
가까운 "이"죠. 결국 영어에는 한글의 "이"에 해당하는 발음이 없는 것이죠.
결국 우리 귀에는 구분되어 들리는 소리가 인도유럽어족의 사람들에겐
똑같은 소리로 들려서 서로 의사소통이 힘들어 지는 것이지요. 문장이
아니라 특정 단어 하나만 들려줘서 상대방 외국인이 알아듣느냐를 검증해
보면 쉽게 알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wet"와 "wed"를 들려주고 인도유럽어족 사람에게 구분해 보라고
해보면 아마 잘 못할 것입니다. 우리 귀엔 구분되어 들리는데, 한국/중국/
일본/대만 이외의 나라 사람에겐 같은 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혹은 b/p/f/v/r/l 등의 발음을 녹음해서 주파수로 분석해보면, 인도유럽어족의
소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귀를 믿으면, 선생님이
발음을 가르쳐 줘도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아무리 원어민에게 몰입영어교육을
받아도 안되는 것이죠. 발음전공자에게서 정확한 혀의 위치, 입술의 모양,
그리고 혀의 근육의 사용량 등을 정확히 배워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요. 39개의
영어 특유의 발음을 배우면 되는 것을, 애들 잡아가면서 몰입교육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저는 이번 학기엔 문법이랑 발음이랑 기초를 많이 다지고 있어요. 듣기도 굉장히
많이 향상이 된 것 같아요. 독서 속도가 빨라지니까 듣기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
아요. 마치 에스페란토어를 익히는 양 의미구 단위로 머리속에 집어넣으면
저 혼자서 알아서 이해가 되니까 번역에 별도로 시간을 쓰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어나 일본어.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쓰는 스와힐리어는 모음이 없으면 발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성대를 사용하지 않고 바람소리만을 이용하는 영어의 무성음이
없다고 그래요. 더구나 무성음이란 뜻의 "Unvoiced" 혹은 "Voiceless"란 소리를 낼듯
말듯 내는 것이 아닌데, 한국 사람들 귀엔 잘 들리지 않는 소리니까, 영단어의 끝에
있는 자음은 소리가 들릴 듯 말듯 내라 그렇게 가르친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 일본, 대만,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단어의 끝 소리를 내지 않아서
미국이나 인도유럽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터키 등 유럽인들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는 것이구요. 예를 들어" wet"는 웻이 아니라 웨하고 t라는 무성음을
발음해야 하는 것이죠. "sink"도 싱크가 아니라 싱하고 k 바람소리를 내야하는
것이구요. 문제는 이들 무성음이 한글에 없기 때문에 모음을 붙여서 성대를
사용해서 소리를 내다 보니까 미국이나 유럽인들 귀에는 다르게 들리는 것이죠.
"wet"라고 해도 웻이라 하면 "wed"랑 구분을 못해요. th등의 소리도 그렇구요.
발음훈련을 할 수 있는 캐나다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발견했는데 정말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자신의 발음을 그래프로 만들어서 주파수로 비교해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무성음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선생님들이 가르쳐 줄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무조건 받아쓰기를 하면 듣기실력이 좋아지지지만, 정작 말하기
는 달라지지 않으니까. 별도로 발음을 배워야 말할 수가 있는 것이구요. 50년 100
년이 지나도 그 선생님이 그 제자를 키워서 영어를 가르치니 한국이나 일본의
영어교육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이지요.
굳이 원어민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기초적인 발음과 문법
등을 일본식이 아닌 미국이나 혹은 인도유럽어족의 소리로 배우다면 말이죠.
그러다가 발견한 건데 우리가 한글을 우랄 알타이어 어족이라 배웠는데 이것이
아직 서양 학계의 검증을 거친게 아니라고 그래요. 몽골어 계열인 알타이어나,
러시아 혹은 그 변형인 핀란드, 헝가리어 처럼 우랄계에 속하는 것인지 아직도
논쟁중이라고 하는군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게 검증받지 않은 학설인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증거라는 것이 겨우 합성어의 사용(계란과자 등)과 모음조화 현상(양과 음의
모음끼리 사용한다는 것) 정도인데 나머지 글자나 발음 모두 다 전혀 다르거
든요. 어순이 주어/목적어/동사라는 것은 라틴어도 똑같데요. 결국 어순이
달라서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라틴어를 쓰는
로마 사람들도 영어를 잘 하잖아요. 인도유럽어족이나 기타 서양언어의
구분 기준과 한국과 일본의 언어는 서로 알아 들을 수 없는 별개의 소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영어 학습법도 전혀 달라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언어는 암기나 이해만으로 그치는 공부로써는 배울 수가 없고, 실생활에 쓸
정도로 훈련이 추가되어야만 하는 것 같아요. 한글을 떠올려서 번역하는
방식으로 영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아기가 되어서 모든 문장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 다시 머리에 새로운 문장을 집어 넣는 것이지요. 영어로 된
책을 번역이 아닌 영어식(의미구 단위로 머리에 집어 넣되 다시 재구성하지
않는 것)으로 집어넣을 수 있도록 독서를 새롭게 해주면, 점점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문화처럼 점점 가랑비에 젖어드는 것이지요. 몰입교육이 필요한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문화를 번역문이 아닌 그 나라 언어로 독서하는 습관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글쓰기 역시 일본/한국식 영어 작문이 아니라 영어독서를
한후 그에 관해서 말하기 혹은 글쓰기를 함으로써 내용있는 글쓰기를 배울
수가 있을 것 같구요.
언어학자들이 아무런 검증없이 서양의 이론들을 적용해서 별도의 언어교육
방법이 필요한 한/중/일/대만의 상황을 더 혼동시킨 것 같아요. 발음을 구사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란 거지요. 또한 일본식
문법용어의 사용이 더욱 이해를 어렵게 한 것도 있는 것 같구요. 성대를 사용
하지 않고, 모음을 사용하지 않고 소리를 내는 "unvoiced"를 무성음이라고 번역
해 사용하니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한국이나 일본어
에는 없는 개념이다 보니 일본사람들도 이해를 못하고 번역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만요.
결국 영어를 공부하는 왕도는 특정 표현이나 특정 문장을 외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본 독서량을 늘려서 미국인들 수준으로 영어책을 많이 읽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번역을 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거죠. 100
페이지를 읽어서 실생활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문장 한두개를 본능적으로
익히게 되는 것이 유일한 콩글리쉬 아닌 영어문장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해요.
아이들이 24개월때 30개 단어, 36개월에 1000개의 단어를 쓰다가 어느 순간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단계로 말을 하듯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문법과
단어를 암기해서 접근하기 보단, 기초부터 다져서 새로운 문화권에 다시 태어난
것 처럼 영어독서량을 늘려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시간이 없다며, 특정
표현이나 문장을 외우는 방법으로 접근하면 시간이 지나갈 수록 영어를 잊어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프리젠테이션용 표현과 토론용 표현을 별도로
외워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은 불필요한 암기력 낭비라는 것이지요.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영어 독서량을 늘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영어실력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작문법을
배워서 한글에서 영어로 글을 옮기긴 보단, 영어 독서를 하다가 좋은 표현을
반복적으로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글 쓸 때도 그러한 표현이 나오게 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언어학습법이 되는 것이지요. 마치 무조건 암기를 하기
보다는 7회독 8회독 하면서 소설 읽듯이 많이 읽어주면 자연스럽게 본능적
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한글로 경험한 것을 영어로 쓰기 보다는 영어로 된 영화를 보고 영화 관람평을
쓴다던지, 영어 소설을 보고 줄거리를 수학공식처럼 정리해 본다던지, 혹은
영어 판례를 읽으면서 각 문단의 첫줄, 주제문을 뽑아내서 목차를 정리해
본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영어 경험을 영어로 써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로 된 교과서적인, 아카데믹한 글을 많이 읽으면, 영어 글쓰기뿐만 아니라
한글 글쓰기도 표현이 다양해질 수 있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기존의 선생님
들이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100년이 가도 절대로 잘못된 발음이나 잘못된 문법
을 새로 배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영어로 된 발음책이나 문법책을 사서 공부 한다고 해도, 결국
번역하면서 일본식 발음용어나 문법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여전히 잘못된
영어를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해석되는, "although"나 "even though"를
양보의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부사 이렇게 외우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죠. 영어로는 대조관계를 표현한다는 뜻으로 "expressing contrast"이거든요.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때문에(because)가 아니라, 인과관계의 반대인 대조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because)비가 오기 때문에 소풍을 못갔다"는 인과관계를
나타내지만, "(even though)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소풍을 갔다"는 대조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니까요. 얼마나 일본식 문법용어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다른 예를 들면, "so that"을 결과용법이라 배우는 것이지요. 혼동되기 쉬우니까
"so"와 구분을 못한 일본이 엉터리로 문법용어를 만든 것이지요. 아예 "소데쓰"
라고 일본어로 만들어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어로는 "purpose"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즉, "(purpose)시험에 합격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는 두 문장이 "(so that)열심히 공부했다 so that 시험에 합격하기를 원해서"
라고 되는 것인데 결과용법으로 잘못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단어의 일본식 번역 역시 개념을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logic"의 경우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로지"라고 발음을 따와서
글자를 만드는 가차문자로 표현을 하는데, 일본은 사고방식이란 의미로
논리라고 번역을 합니다. 영어의 의미는 타당한 근거와 타당한 결과, 즉
모든 단계에서 타당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일본식 번역은 각자의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식의 나의 논리, 너의 논리라고 엉터리로 말해지는 것이 가능
하도록 만든 것이지요.
언어가 문화를 지배하는데, 이렇게 엉터리로 서양 문화가 수입되니까, 제멋
대로의 해석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한국/일본/중국/대만이 합리적, 객관적
이지 못하고 권위주의적, 주관주의적, 이중잣대를 사용을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도대체 합리나 논리가 무슨 개념인지 알지를 못하기 때문이지요.
발음에 대한 잣못된 지식 역시 심한 형편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는 "오"라는
발음이 없습니다. "오우"라고 하죠. 그리고 국제발음표기법으로는 장음과 단음
으로 표기되는 "beat"의 i발음과 "sit"의 i발음은 길게 짧게 하는 한국식 장단음
구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외국언어를 도입할 때, 한국어나 일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언어식으로 이해하여 가르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입니다.
영어로는 혀의 근육을 사용해서 긴장음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장음으로 아는
"beat"의 "이" 발음입니다. 긴장음이니까 진동음, 즉, 바이브레이션이 발생
합니다. 근육을 쓰다보면 손가락이 떨리듯이 말이죠.
반대로 "sit"의 경우에는 의식하지않고, 혀의 근육을 전혀 쓰지 않은채 "으"에
가까운 "이"죠. 결국 영어에는 한글의 "이"에 해당하는 발음이 없는 것이죠.
결국 우리 귀에는 구분되어 들리는 소리가 인도유럽어족의 사람들에겐
똑같은 소리로 들려서 서로 의사소통이 힘들어 지는 것이지요. 문장이
아니라 특정 단어 하나만 들려줘서 상대방 외국인이 알아듣느냐를 검증해
보면 쉽게 알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wet"와 "wed"를 들려주고 인도유럽어족 사람에게 구분해 보라고
해보면 아마 잘 못할 것입니다. 우리 귀엔 구분되어 들리는데, 한국/중국/
일본/대만 이외의 나라 사람에겐 같은 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혹은 b/p/f/v/r/l 등의 발음을 녹음해서 주파수로 분석해보면, 인도유럽어족의
소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귀를 믿으면, 선생님이
발음을 가르쳐 줘도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아무리 원어민에게 몰입영어교육을
받아도 안되는 것이죠. 발음전공자에게서 정확한 혀의 위치, 입술의 모양,
그리고 혀의 근육의 사용량 등을 정확히 배워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요. 39개의
영어 특유의 발음을 배우면 되는 것을, 애들 잡아가면서 몰입교육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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